적절한 산지관리 없이 무분별한 난개발로 대량의 토사 유실
기후위기로 집중호우 잦아져… 산지개발 허가기준 강화 필요

[환경일보] 집중 호우로 전국이 피해를 입은 가운데 인명피해를 일으킨 산사태 대부분이 적절한 산지 관리 없이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발생한 인재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행정안전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의 집계에 따르면 8월12일 오전 6시 현재 폭우로 인한 사망자 33명, 실종 9명이며 이재민은 약 7800명에 달한다.

특히, 사망자의 약 40% 가량인 13명이 산사태 피해였다. 전남 곡성 산사태 5명, 전북 장수 산사태 2명, 경기 가평 산사태 3명, 평택 산사태 3명 등 13명이다.

그런데 산사태의 원인을 파고들면 모두 인재로 확인되고 있다. 산지를 이용하면서 집중강우에 대비한 배수체계가 이뤄지지 않아서 발생한 인재였던 것이다.

정부는 우면산 산사태 이후 산지재해를 근본적으로 막겠다고 했지만 현장에서의 산지관리는 산사태 등 재해 예방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이번 장마에서 산사태로 가장 큰 피해가 난 전남 곡성의 경우 5명의 사망자를 낸 현장은 인재에 의한 참사를 그대로 보여 준다.

사고 원인 감추려 현장 통제

곡성 산사태는 국도 보강공사 옹벽을 쌓은 곳에서 시작됐다. 최초 발생지점은 15번 국도 성덕고개의 도로 확장공사를 하는 곳이었다.

국도 보강 공사를 하면서 흙을 쌓고 주변에 콘크리트구조물 등의 옹벽을 올렸는데 거기서 무너진 것이다. 현장에서 도로 노면이 깊이 50m까지 꺼져 있다.

사고 지점은 15번 국도 전남 곡성 오산면과 화순 백아면의 경계인 성덕고개에서 곡성 오산면 성덕 마을쪽의 국도 공사 현장 옹벽이었다.

이 국도는 전남도청 도로교통과에서 관리하고 있다. 도로 보강공사는 전남도청 도로관리사업소에서 담당했다.

전남도청은 산사태 현장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사고 당사자인 마을주민들의 현장 확인을 위한 접근은 물론이고 언론의 접근조차 막고 있다.

현장에서 보면 곡성 산사태의 인과 관계가 명확히 드러나기 때문에 그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서인지 출입을 막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시공업체를 내세워서 약 2㎞ 아래 도로 입구부터 차단시설을 설치해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사고 이후에는 현장을 통제하고 있지만, 장마로 폭우가 내릴 때는 현장점검 등의 재해를 막기 위한 통제는 전혀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사고가 발생한 8월7일 금요일 오후부터 성덕고개 주변의 국도에는 빗물이 상당히 밀려들었다는 주민들의 증언이 속속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국도 확장 공사를 담당했던 전남도청 도로관리사업소는 현장 점검을 전혀 하지 않았다. 전형적인 인재의 단면이다. 곡성 산사태는 500㎜폭우에 부실한 국도관리가 낳은 참사였다.

곡성 산사태는 국도 보강공사 옹벽을 쌓은 곳에서 시작됐다. 국도 보강 공사를 하면서 흙을 쌓고 주변에 콘크리트구조물 등의 옹벽을 올렸는데 거기서 무너진 것이다. 현장에서 도로 노면이 깊이 50m까지 꺼져 있다. <사진제공=녹색연합>

산지 개발 후 허술하게 복구

경기도 가평펜션의 경우도 전형적인 인재다. 2010년 전후부터 항공영상을 판독한 결과 가평 산사태 피해 현장 주변이 과거 산지를 개발한 현장이었음이 확인됐다.

가평 펜션이 들어선 뒤쪽 사면은 2010년 이전에 산지를 절토해 암반이 드러나도록 훼손했던 곳이다. 이후 사면에 복구를 했고 그 아래에 사고가 발생한 펜션이 들어섰다. 그리고 복구했던 상단부에서 산사태가 발생했다.

일반적으로 산지개발 이후 복구를 튼튼하게 하지 않으면 그 상단이 붕괴되거나 무너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산림전문가와 신림기술자 사이에서 ‘밑이 빠져서 산사태가 났다’라고 표현하는 그런 사례다.

가평 산사태 피해 펜션 주변의 개발과 복구에 관련된 산지 인허가가 어떠했는지는 지난 10년여 간 항공영상에 정확히 나와 있다.

평택 공장 붕괴 현장도 본질은 다르지 않다. 산지주변을 개발하고 토사의 유실이나 붕괴에 대한 정확한 고려를 하지 않고 인공구조물을 설치한 결과였다.

지난 8월6일 오후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가평군 가평읍 산유리 산사태 사고 현장을 점검하면서 "앞으로 경사지에 주택 건축 수요가 많아지는데 기후가 점점 불안정해지기 때문에 안전보장을 위해 산지에 전용허가를 할 때 기준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타당한 지적이지만 중요한 문제는 지난 2000년 전후부터 산지를 무분별하게 개발하고 이용해 들어선 각종 산지 전원주택과 펜션 등의 재해 위험이다.

지난 2011년 7월27일에 강원도 춘천시 신북읍 천전리 마적산 산사태로 펜션에서 13명이 사망했다.

가평 펜션처럼 산지 비탈면 아래에 들어선 펜션에서 참변을 당한 것이다. 산지에 펜션을 지으며 산사태 위험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춘천 펜션 사고 이후 정부는 대책 마련을 약속했으나 정책과 제도는 물론 현장에서도 실효성 있는 방안은 여전히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경기도 가평펜션의 경우 2010년 전후부터 항공영상을 판독한 결과 가평 산사태 피해 현장 주변이 과거 산지를 개발한 현장이었음이 확인됐다. <사진제공=녹색연합>

산림당국 중심 컨트롤타워 필요

산지전용 허가에서 안전 대책을 강화하는 것과 함께 기존의 산지전용허가를 부실하게 해 준 건물과 시설들의 산지 재해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경기도 가평, 양평, 용인, 여주, 이천 등을 비롯해 강원도 춘천, 횡성, 홍성, 평창 그리고 충청남도 일원에 수만 채의 펜션과 전원주택이 산지의 비탈면에 파고들어서 있다. 이 중 상당한 주택들이 산지 재해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앞으로 집중폭우는 과거보다 더욱 예측 불가능한 형태로 자주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여름 장마는 수도권부터 영호남까지 전국에 걸쳐 일어났으며 한반도가 기후변화에 직면했다는 생생한 증거다.

녹색연합은 “이번 산사태에 의한 인명피해는 기후위기 시대, 정부가 국민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며 “국가적 재해재난 중의 하나인 산사태 대응에서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다른 근본적인 대비를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산지에 들어서 있는 도로와 철도의 선형구조물, 송전탑과 풍력시설, 태양광시설, 그리고 군사시설 등의 주요 국가시설에 대한 실질적인 위험 조사와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산사태를 비롯한 산지 비탈 재해 대책을 관련부처인 국토부와 산업부 등에 맡길 것이 아니라 산림당국을 중심으로 산사태와 산지재해에 대한 국가컨트롤타워를 구성하고 전국적인 산지 위험지 조사를 정밀하게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자체의 각종 산지 난개발에 대한 규제 강화도 필요하다. 특히 산지의 주택 개발에서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 가이드라인이 반드시 필요하다.

녹색연합은 “산지 개발은 성토와 절토가 필수적으로 따르지만 그런데 소규모 개발의 경우 개별 입지에 대한 개발행위 허가 제도는 상당히 허술해 대부분 시군의 승인사항”이라며 “산지재해에 대한 전문성은 고사하고 기본적인 고려조차 없이 허가가 남발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따라 산지의 소규모 택지개발에 있어서 재해 안전 기준과 인허가의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표고, 경사, 절토면의 기준 등을 비롯해 시설물 상단의 임상구조까지 고려하도록 법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펜션이나 전원주택이 들어서는 상부에 산사태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침엽수가 많거나 침엽수 위주라면 허가를 더 엄격하게 하는 등의 실질적인 대책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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