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적으로는 고용 창출, 장기적으로는 국가 지속가능성 확보 주력해야
경기부양이 아니라 기후위기 극복이 핵심, 좌초자산 리스크 대응 필요

윤제용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장이 지난 28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KEI 환경포럼’에서 ‘한국판 뉴딜의 발전방향, 그린뉴딜’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사진=김봉운 기자>

[더플라자호텔=환경일보] 이채빈 기자 = 정부가 한국판 뉴딜에 이어 그린뉴딜 사업을 추진 중인 가운데 지속가능발전을 위해서는 재정투입뿐 아니라 제도 개선과 민간 참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윤제용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장은 지난 28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 환경포럼’에서 ‘한국판 뉴딜의 발전방향, 그린뉴딜’ 주제발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윤 원장은 “그린뉴딜은 단기적으로 고용을 창출하고, 장기적으로는 국가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 민간 참여를 제한하는 규제 제도를 개편하고, 재정지출확장과 녹색금융 등 민간이 자금을 투자할 수 있는 금융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단순히 재정투입을 통해 경기를 부양한다면 그린뉴딜의 안정적 추진은 불가능하다”며 “정부는 녹색전환을 앞당기는 마중물 역할을 하고, 규제 개혁과 정책 수립 등을 통해 민간의 참여를 활성화하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장에 초점 둔 투자 방식 답습해선 안돼”

안병옥 국가기후환경회의 운영위원장(왼쪽)과 강현수 국토연구원장(오른쪽)이 지난 28일 열린 ‘KEI 환경포럼’에 참석해 그린뉴딜 추진 방향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사진=김봉운 기자>

이어진 토론에서는 그린뉴딜 추진 방향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오고 갔다. 안병옥 국가기후환경회의 운영위원장은 경제 탈탄소화를 중심으로 한 그린뉴딜을 강조했다. 그린뉴딜의 방점을 일자리 창출보단 기후위기 극복에 둬야 한다는 것이다.

안 위원장은 “과거 정부의 녹색성장과 같이 경기부양을 위한 투자 방식을 답습해선 안 된다”며 “저탄소 산업과 기술에 대한 투자를 우선으로 일자리 창출 효과를 끌어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를 위해서는 정책 일관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이정표부터 세울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린뉴딜의 개념과 목표를 명확히 하고, 정책 방향에 대한 기준을 세워 그린뉴딜과 대치되는 것들은 과감하게 정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린뉴딜 주요 사업 ‘건축물 리모델링’

강현수 국토연구원장은 그린뉴딜의 주요 사업으로 ‘그린 리모델링’을 제시했다. 노후 건축물에 대한 대대적인 개보수 사업으로 일자리 창출은 물론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에도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견해다.

강 원장은 “코로나19 여파로 고용 충격이 경제의 근간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일자리 창출 효과가 높은 건축물 리모델링은 그린뉴딜의 핵심 정책이 될 것”이라며 “노후 건물 재생 사업을 통해 환경개선과 민간 참여, 경제성장, 지역 활성화, 나아가 에너지 자립이라는 선순환 구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따라서 사업의 시급성과 공익성을 고려해 학교와 군대 등 공공시설물 중심으로 리모델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공공임대주택의 선제적 투자와 민간시장 조성 등 건축물 그린뉴딜 활성화를 위한 정책과제를 폭넓게 논의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또 국토 전체의 리모델링을 위해서는 스마트그리드 사업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한국전력이나 한국토지주택공사와 같이 전력공급과 택지개발을 독점한 상황에선 그린 리모델링이 실현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스마트그리드 같은 부분은 디지털뉴딜과 그린뉴딜이 만나는 지점이기도 해서 효과를 창출하기 매우 좋은데, 이를 위해서는 산업부와 관계 기관과의 협상이 이뤄져야 한다”며 “만약 이런 문제가 해결된다면 단기간에 효과적인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좌초자산 리스크 반영해 정책 추진

김유찬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왼쪽)과 장지상 산업연구원장(오른쪽)은 이날 포럼에서 그린뉴딜 정책 방향에 대해 좌초자산 리스크를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김봉운 기자>

그린뉴딜의 주요 과제인 에너지 전환에 대한 논의도 이뤄졌다. 김유찬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은 “에너지 분야는 정부 재정만으론 민간 참여가 어려운 구조”라며 “합리적인 에너지 가격 체계를 확립해 민간 참여를 이끌 수 있도록 경제·산업구조 전반을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전기요금이 올라간다는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며 “에너지 가격이 올라가면 그 비용이 어디 가는 것이 아니라, 좌초자산 등 다른 측면의 손실을 상쇄하는 전략에 쓰인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지상 산업연구원장 역시 그린뉴딜 추진 과정에서 좌초자산을 배제해선 안 된다고 피력했다. 화석연료에 기반을 둔 정유, 석유화학, 내연기관 자동차 등 좌초자산 리스크에 적절히 대응하지 않으면 자산 가격이 급락하고, 이에 따른 사회적 갈등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장 원장은 “그린뉴딜을 안정적으로 추진하려면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며 “녹색전환에 따른 좌초자산이나 이해관계를 정책에 반영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이어 “에너지 전환은 생활방식을 바꿔야 할 어려운 과제인 만큼 사회적 수용성을 충분히 반영해 목표를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민간시장 활성화로 에너지효율 극대화

(왼쪽부터)조용성 에너지경제연구원장, 조흥식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 강찬수 중앙일보 환경전문기자 <사진=김봉운 기자>

에너지 전환의 방향성도 제시됐다. 조용성 에너지경제연구원장은 “합리적인 요금 체계와 사회적 공감대 형성, 시스템적 접근을 통해 에너지 전환을 이룰 수 있다”며 에너지 전환 추진 방안으로 ▷좌초자산에 대한 투자 제한 ▷녹색전환에 따른 고용 지원 ▷민간시장 활성화를 통한 에너지효율 극대화를 제안했다.

조 원장은 또 “그린뉴딜은 사회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추진돼야 한다”며 “정부 중심이 아닌 기업과 국민의 합의를 통해 경제·산업 시스템을 재편해야 할 것”을 주문했다. 무엇보다 “에너지산업은 환경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며 “전체 에너지의 99%를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의 경우엔 친환경 에너지 정책이 필수적”이라고 역설했다.

에너지·건물·식량 ‘3박자’···지속가능발전 전략

지속가능성의 중요성은 재차 강조됐다. 조흥식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은 “1970년대 미국에서 제시된 녹색뉴딜의 세 가지 요소 중 하나가 지속가능성”이라며 “그린뉴딜은 근본적으로 지속가능성을 목표로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일깨웠다. 경제성장과 같은 부연적인 논의도 중요하지만, 이로 인해 지속가능성이라는 최대 목표가 외면당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조 원장은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려면 에너지, 건물, 식량 부문을 중심으로 그린뉴딜 사업을 펼쳐야 한다”며 “무엇보다 지속가능성의 회복을 위해선 불평등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데, 이 세 가지 부문이 사회 불평등을 최소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이밖에도 그린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강찬수 중앙일보 환경전문기자는 노후 상하수도 정비와 하수처리시설 확충 등 지하시설물의 점검과 보수보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린뉴딜은 보이지 않는 통로”라며 “노후 수도관 교체 등 거대한 지하시설물에 대한 유지관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뉴딜정책, 거시경제 관점에서 검토해야”

한편 종합토론에선 한국판 그린뉴딜을 전환 시대의 경제성장 도구로만 이용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정영근 선문대학교 교수는 “뉴딜정책과 그린의 조합이 합당한지 다시금 짚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지속가능발전과 뉴딜정책을 동일 선상에서 본다면 이번 그린뉴딜의 방향에 오류가 있어 보인다”며 “중·장기적 관점에서 해결해야 할 사안을 그린뉴딜의 명목으로 모두 한 번에 해결하기 위해 많은 분야를 포함하면 실효성에 문제가 나타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뉴딜정책은 거시경제를 기반으로 장기적 관점에서 이행돼야 하지만, 거시경제를 다루는 전문가가 없고 성과에 급급한 단기적 양상을 보인다”며 “뉴딜의 개념과 목표를 명확히 이해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룬 뒤 장기적 관점에서 정책을 집행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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