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김중식이 만난 뻔FUN한 예술가 ⑳] 정두화 작가

sound18-so1 63x63cm 4EA book on wood 2018 정두화

[환경일보] 생명이 시작되며 더불어 시작된 소리······. 이 소리는 다양한 모습으로 종이 위에 활자가 되어 우리에게 돌아온다. 나에게 있어 소리란 다양한 형태의 사람과 사람, 사람과 동물 더 나아가 자연과의 소통에서 가장 자연스럽게 교감할 수 있는 형태라 생각한다.

우리는 서로 소리를 듣고 내고 느끼며 서로의 존재를 알아간다. 어쩌면 특정 대상이 아닌 모든 사물과 자연을 소통하며 서로를 느끼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 소리를 이미지화해 그들과 서로 느끼며 소통을 유도하고자 한다.

작품의 주재료는 책이다. 시간과 공간의 경로를 여행하다 다시금 누군가와 소통하기 위해 소리를 가득 머금은 책은 우리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에서 역사, 종교, 학문, 예술 등 광범위한 소통을 끌어내는 중요한 매개체다. 인쇄된 활자는 다른 누군가에게 새로운 의미로, 지식의 축적과 전달의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 소통의 장을 열게 된다.

책의 질료 측면을 표현하면서 책 속에 담긴 의미와 우리들의 작고 큰 이야기를 내면적 이미지로 표현하려 한다. 나무에서 종이로, 그 종이 위에 다양한 이야기가 담긴 책으로 태어나, 각각의 역할과 의미를 담고 이야기되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소통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을 이용해 종이의 성질과 시간성으로 나눈다. 작은 조각, 낱알만 한 크기로 수없이 찢어 붙이고, 쌓고, 말아져 작은 알갱이로 변형돼 화면 위에 붙여져 이미지가 된다.

단지 표면적 시각효과에만 머무르지 않고, 우리 마음속 시각적 사유의 숲을 거닐게 하고 싶다. 작품을 감상하는 이에게도 시·지각적 확장성과 추상적 이미지의 다의적 해석을 관용적으로 유도하고, 즉각적이고 순수한 자연 상태의 소통으로 환원하고자 한다. <작가노트 중에서>

Forest17-F1 182x80cm book on wood 2017 정두화

프랑스 소설가 미셸 투르니에는 책과 독자의 만남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깨알 같은 흡혈박쥐들이 책 속에서 날아올라 독자의 피를 빠는 극적인 경험이며 사건을 겪는 것이라고. 여기서 종이는 절벽이며, 활자들은 흡혈박쥐에 해당한다. 책을 펼치는 순간, 절벽에서 잠자고 있던 흡혈박쥐들이 날아올라 독자의 폐부를 찌르고, 독자를 울리고, 웃기고, 설레게 하고, 가슴을 쥐어뜯게 만든다. 독서행위가 독자에게 불러일으키는 상호작용을 유비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19세기 프랑스의 상징파 시인 말라르메는 자신을 책으로 가득한 곰팡내 나는 서재에다 비유하고, 프랑스의 평론가 롤랑 바르트는 너무 많이 고쳐 쓴 나머지 너덜너덜해진 양피지에 자신을 비유한다. 알다시피 양피지는 책 이전의 책이고, 필사본이었다. 아르헨티나 소설가 보르헤스의 역작은 대개 작가가 눈이 먼 다음에 나온 것들이다. 작가가 이야기하면 그 이야기를 사서(타이피스트)가 받아 적는 것인데, 이야기로 가득한 작가의 머리 자체가 이미 책이고 도서관이었다.

사람이 만든 물건 중에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거로 치자면 책만 한 것이 없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가 존재의 집”이라고 했다. 언어에 존재가 고스란히 반영돼 있어서 언어를 들여다보면 존재가 보인다는 말이다. 사람의 개념, 인격, 정체성이 모두 언어를 통해 표현되고 언어로 인해 결정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하이데거의 이 말은 ‘사람이 곧 언어의 집’이라는 말로 고쳐 읽을 수 있고, ‘사람이 곧 책’이라는 말로 이해해도 무방하겠다. 

이야기를 간직하고 보존하고 전달하려는 욕망이 구술문화 시대를 넘어 기술문화 시대 곧 책의 시대를 열었다. 책 자체는 기술문화 시대의 산물이지만, 정작 책의 내용에 해당하는 이야기의 역사는 구술문화 시대로 소급된다. 책의 역사가 이야기의 역사이고, 이야기의 역사는 책의 역사에 한정되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은 책에 한정되지 않는, 또 다른 경우의 책이 존재할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또 다른 경우의 책, 여기에 정두화의 작업이 자리 잡고 있다.

Forest18-F10 47x45cm book on wood 2018 정두화

정두화 작가는 책을 해체해 또 다른 책을 만든다. 엄밀하게는 책을 소재로 조형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책의 의미를 재해석한 점과 여전히 책의 의미를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책에 연장된다. 형식으로 치자면 책을 질료와 형태 같은 물질적 차원으로 재해석한 점에서 예술가의 책, 곧 아티스트 북과도 일정 부분 연동된다.

작업 과정을 보면 먼저 책을 수집하고 분류한다. 이 과정에서 시간이 매개된다. 즉 시간대별로 수집된 책을 분류하는 것인데, 고서와 같은 헌책과 새 책이 머금은 시간의 질감이며 색감이 다르다는 사실에 착안한 것이다. 책이 머금은 시간의 질감과 색감은 책을 소재로 한 조형에 그대로 옮겨지고 반영된다. 따라서 헌책을 소재로 만든 조형의 경우 조형이 자기 내부에 시간의 향기를 머금고 있는 것 같은 고답적인 느낌을 주고, 새 책을 소재로 만든 조형의 경우에는 조형 역시 현대적인 느낌을 준다.

시간대별로 책을 분류하는 이유는 형식적인 차이나 구별을 강조해 조형적 효과를 꾀하기에 쉬운 점이 있는 것과도 무관하지가 않을 것이다. 회화로 치자면 여하튼 물감이 많아야 그림에 변화도 기할 수가 있고, 다채로운 그림도 가능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로 보면 되겠다. 그리고 고답적인 느낌이나 현대적인 느낌 자체만 해도 그저 헌책 아니면 새 책을 소재로 한다고 해서 저절로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헌책이 주는 그리고 새 책이 주는 최초의 느낌은 다만 일차원적인 인상에 지나지 않을 뿐, 정작 미학적 경험에 해당하는 부분, 이를테면 고답적 혹은 모던한 느낌에 대한 감각적 이해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Thinking of forest17-F2 diameter 82cm book on wood 2017 정두화

정두화는 이처럼 책을 재료로 해서 때론 시간의 향기를 머금고 있는 것 같은 고답적인 분위기의 조형을, 더러는 현대적인 느낌의 조형을 연출한다. 그리고 이따금 다른 시간대에 속하는 책 재료를 하나의 조형 속에 혼용해 시간과 관련한 다른 개념을 연출하고 제안하기도 한다. 직선적인 시간(과거에서 현재로 흐르는), 선분적인 시간(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구분되면서 연결되는), 물리적인 시간, 객관적인 시간과는 다른 주관적인 시간 경험이나 개념을 제시한다.

어쩌면 시간이야말로 책을 이용한 작가의 조형 작업의 진정한 주제일지도 모른다. 정두화는 책을 매개로 해 형태도 색깔도 없는 시간을 가시화하고 형상화한다. 나아가 책 자체가 이미 시간의 집이며 건축이기도 하다. 그저 헌책 아니면 새 책의 문제가 아니라, 책을 통해 이야기가 전승되는 차원을 생각하면 될 일이다. 

서두에서도 언급했듯이 책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보존하고 전달하려는 욕망의 소산이다. 시간이 전제되거나 매개 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작가가 조형으로 옮겨놓고 있는 시간은 단순히 조형적인 성과나 결과로만 볼 일은 아니다. 시간 자체를 책의 본성 중 결정적인 경우로 보고, 그 본성을 주제화한 경우로 봐야 할 것이다.

정두화 작가의 작품 소재는 오로지 책이다. 일일이 낱장에 풀칠해 탑처럼 쌓아 건조시킨 뒤, 균일하게 썰어 다양한 패턴으로 작품화했다. sound18-so1 detail book on wood 2018 정두화

정두화의 작품은 책에 내재한 시간의 지층을 그리거나 만들고, 책 속에 흐르는 시간의 궤적을 조형한 것이다. 그러므로 작가의 작업은 시간의 표상이다. 그 자체가 이미 시간의 집인 책을 해체해 또 다른 시간의 집으로 재구성하고 재축조한 것이다. 따라서 작가의 작업은 건축적이다. 

마치 벽돌을 쌓듯 하나의 단위구조를 쌓아나가는 매우 어려운 과정(책을 낱낱이 찢고, 붙이고, 둥글게 말고, 책의 단면을 자잘한 조각들로 절단하고, 모판에 모를 심듯 심고, 사포로 표면을 갈아내는)을 통해 책과 마찬가지의, 책에서 비롯했지만, 책과는 다른, 그런 일종의 시간의 건축물을 구축하고 축조한다.

책의 원형에 해당할 이야기는 원래 책으로 기술되기 이전에 낭송되고 낭독됐다. 시나 노래와 같은 문학 형식, 철학적 논쟁과 같은 사변적 다툼은 모두 활자 이전에 소리를 매개로 전달됐다. 이로부터 광장문화와 아카데미 문화가 유래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특히 교육 현장에선 기술문화보단 토론문화가 더 효과적이라고 보고, 이를 고수하는 문화권이 많다. 말하자면 책은 동시에 눈으로도 그리고 입으로도 읽을 수가 있다.

Sound17-S2 100x100cm book on wood 2017 정두화

정두화는 책을 소리로 표현한다. 엄밀하게는 책의 내용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소리로 표상한 것이다. 이 때문에 작가는 어쩜 읽는 책과 함께 듣는 책에 조형적 관심이 기울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마치 보르헤스의 이야기를 받아 적는 타이피스트처럼. 그리고 더 먼 경우로는, 이야기 전수자의 말에 온통 귀를 기울이고 있는 구술문화 시대의 사람들처럼 말이다.

작가는 단위구조에 해당하는 책 조각을 낱낱이 쌓아나가는 방법을 통해 책과 이야기, 시간, 소리를 조형한다. 마치 수면에 돌을 던지면 물결이 파문을 그리면서 번져나가듯 일정한 굴곡과 함께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나가는 형태다. 

구조적으론 스피커를 연상케 한다. 중심에서 가장자리로 번져나가고 퍼져나가는 소리의 방향성을 생각하면 되겠다. 다시 말해 이야기가 전달되는 과정, 독자와 저자의 조우, 한 권의 책이 독자의 폐부를 찌르는 극적인 순간을 조형한 것이다. 또 독자의 무의식을 파고드는, 독자에게 공명하는 내면의 소리를 형상화한 것이다.

Thinking of forest18-F4-8 31x31cm 5EA book on wood 2018 정두화

정두화의 조형은 외적으로 무관해 보이는 책들의 집합이며, 조합으로 재구성된 것이다. 동시에 그 자체를 다른 언어, 인종, 관심사들의 무분별하고 우연한 조합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책을 매개로 한 작가의 조형은 이런 다름과 차이를 넘어 봉합하고, 하나로 통하게 하는, 소통의 계기를 주제화한 것일 수 있다.

사실 작가의 조형엔 책과 텍스트도 없고,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런데도 작가의 작업은 책이다. 책과 텍스트, 소리를 표상한 것이다. 프랑스의 팬터마임 작가 마르셀 마르소는 “말은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지만, 침묵의 언어는 사람들이 생각하게 만든다”고 했다. 마임을 정의한 말이지만, 이 말은 그대로 작가의 조형에도 타당한 말이지 싶다. 정두화의 작업은 말하자면 묵언의 책이다. 미처 활자화되기 이전의 잠재적인 텍스트 혹은 의미이자 침묵하는 소리로, 공명하고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정두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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