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한명이 식욕억제제 1년에 1만6310개 처방 받아… 하루 44개 꼴

마약성분이 포함된 식욕억제제의 경우 과다복용 시 심장이상, 정신분열 등 심각한 부작용이 우려된다.

[환경일보] 올해 4월 배우 Y씨가 펜터민 등 식욕억제제 8알을 먹고 환각 증세를 보여 강남구 논현동의 한 도로를 가로지르고 뛰어다니는 등 이상행동을 보인 사건이 발생했다. Y씨는 현장에서 마약 투약 혐의로 체포됐지만 식욕억제제 과다복용으로 인한 부작용으로 밝혀져 무혐의 처리됐다. 이 사건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며 식욕억제제의 부작용의 위험성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상희 의원이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제출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8년 7월부터 2019년 6월까지 1년 동안 식욕억제제가 2억3500만개 이상, 처방 환자는 124만명 이상인 것으로 확인됐다.

처방량과 환자 수를 하루 단위로 계산해 보니 식욕억제제가 하루에 3414명 이상의 환자에게 64만6000개 이상 처방되고 있었으며, 환자의 식욕억제제 의료쇼핑, 과다처방 요구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

김상희의원실이 식약처로부터 체출받은 ‘2018년 7월부터 2019년 6월까지 식욕억제제 처방량 상위 30명 환자’의 처방량을 확인한 결과 지난 1년간 환자 1명이 식욕억제제 1만6310개를 12개 의료기관을 돌아다니며 93번 처방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처방량이 가장 많은 A씨의 경우 의료기관 당 1359개씩 처방건수 1건당 평균 175개를 처방 받았다. 단순 일수로 계산해보면 1년간 매일 44개의 식욕억제제를 처방 받은 꼴이다.

심장이상, 정신분열 등 부작용 우려

환자의 의료쇼핑도 문제지만 의사의 과잉 처방도 매우 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환자 B씨는 한 곳의 의료기관에서 총 1만752개의 식욕억제제를 처방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환자의 경우 1년 동안 같은 병원에서 80번이나 처방을 받았고 하루 평균 29.5개의 식욕억제제를 처방 받은 셈이다. 이 두 사람의 경우 식욕억제제의 불법판매 혹은 오·남용이 매우 의심되는 사례다.

식약처는 의약품 허가기준에 따라 식욕억제제의 처방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의료기관에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처방권은 의사의 고유 권한으로 가이드라인을 어긴다 해도 제제할 수 있는 규정이 없다.

식욕억제제의 남용은 부작용으로 이어진다. 마약류로 지정돼 관리 중인 식욕억제제는 과다 복용 시 환청이나 환각뿐만 아니라 심한 경우 심장이상, 정신분열 등 치명적인 부작용이 발생한다.

2016년부터 올해 6월까지 식욕억제제로 인한 부작용 보고 건수는 1279건으로 사망자도 4명이나 발생했다. 부작용이 가장 많은 식욕억제제는 로카세린으로 620건이며 펜터민은 489건으로 그 다음으로 부작용이 많이 발생했다. 부작용 계속 발생하고 있지만 여전히 엄청난 양의 식욕억제제가 처방되고 있다.

다이어트를 하지 않으면 게으른 사람으로 취급 받는 잘못된 사회 인식도 문제다. 다이어트에 대한 ㄱ릇된 집착이 식욕억제제의 과다복용을 부추기고 있다.

광주 의사 3만8721개 처방 최다

식욕억제제를 가장 많이 처방하는 의료기관은 의원급으로 전체 처방량의 96.4%를 차지하고 있다.

처방량이 가장 많은 의사 30명은 모두 의원급에서 근무했고 그들의 처방량과 처방 환자 수를 살펴보니 지난 1년간 식욕억제제의 처방량은 약 6000만개, 처방 환자는 24만 2000명 이상으로 전체 처방량의 25% 이상, 전체 환자 수의 19% 이상을 차지했다.

개인이 운영하는 의원급 의료기관 의사의 처방량이 전체의 1/4 가까이 차지하는 셈이다.

지난 1년간 환자 1인당 처방량이 가장 많은 광주광역시 서구에 소재한 의원의 의사 A씨는 38명의 환자에게 3만8721개, 환자 1인당 1019개를 처방했다.

서울 강남에 위치한 의원의 의사 B씨의 경우 총 처방량은 67만5025개이며 처방 환자 수는 744명이다.

B씨의 환자 1인당 평균 처방량은 907개로 식욕억제제의 전체 환자 1인당 평균 처방량이 189개인 점을 고려하면 A의사는 5.3배, B의사는 4.8배 이상 많은 처방을 한 것이다.

처방권은 의사의 고유의 권한이라고는 하나 과도하게 많은 양을 처방하는 병원의 경우 엄격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자료제공=김상희의원실>

죽은 사람 이름으로 식욕억제제 처방

이미 사망한 환자의 이름으로 마약류 식욕억제제가 처방된 사실도 드러났다. ‘사망자 마약류 처방 현황’에 따르면 8개의 의료기관에서 이미 사망한 8명의 이름으로 펜터민, 펜디메트라진, 로카세린 등의 식욕억제제 6종이 1786.5개 처방된 것으로 나타났으며 현재 이 8개 병원은 모두 적발돼 수사 중이다.

김상희 의원은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이 구축된 지 1년이 지난 만큼 식약처가 책임 있는 자세로 마약류 관리에 만전을 다해야 하며, 의사가 환자의 오·남용을 방지할 수 있도록 환자 투약내역 확인 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사망자를 이용해 마약류를 청구해 빼돌린 것이라면, 의료인의 윤리의식 수준이 땅에 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비도덕적 행위는 의사면허 취소까지 보건당국에서 고려해야할 부분”이라며 “마약류 식욕억제제 불법유출에 대한 철저한 관리를 통해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감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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