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섬유화로 사망했지만 정부는 ‘연관성 없음’ 판정, 아무 지원도 못 받아

[환경일보] 환경부가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폐손상과 관련성이 거의 없다(4단계)고 판정한 피해자가 폐섬유화로 사망했다.

고인이 된 조덕진씨는 지난 4월20일 폐렴으로 입원 후 병세가 급격히 악화됐고 25일 오후 11시53분 사망했다. 항년 48세. 유족으로는 아내와 3명의 자녀 그리고 아버지 조오섭 씨가 있다. 빈소는 강동 경희대병원이다.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에 따르면 고인은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옥시에서 출시된 가습기살균제 ‘옥시싹싹 뉴 가습기당번’을 온가족이 함께 사용했다. 고인의 직업은 목사였고, 평소 목을 많이 쓰기 때문에 가습기와 가습기살균제를 많이 사용했다.

옥시 가습기살균제를 함께 사용했던 고인의 어머니 박월복씨는 2012년 사망했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 피해신고를 했지만 ‘가습기살균제 폐손상’은 인정되지 않았고(4단계) 2018년 간질성폐렴으로 피해구제계정을 인정받았다.

아버지 조오섭씨 역시 ‘가습기살균제 폐손상’은 불인정(4단계)됐으며, 2018년 천식으로 피해구제계정을 인정받았다.

의사는 폐이식 수술 권유

아버지와 어머니가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고통받는 것을 본 고인 역시 평소 가족들에게 “나도 돌아가신 어머님처럼 될 수 있다”는 말을 자주했다고 한다.

2016년 초 기침이 심해진 고인은 감기로 생각해 병원에 다니기 시작해 동네병원에서 큰 병원으로 옮겨 다녔고 각종 검사와 진단 끝에 3년 전인 2016년 말 폐섬유화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고인에게 “앞으로 5년 밖에 살지 못하니 폐이식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권고했다.

고인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신고를 했으나 환경부로부터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손상 가능성 거의 없음(4단계)’이라는 판정을 받았고 이후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했다.

고인이 입원할 때부터 가족과 병간호를 함께 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3/4단계 유족모임’ 최숙자 대표는 “가습기살균제로 사망한 내 동생과 똑같은 과정으로 조덕진 목사도 돌아가셨다”며 “다시는 이 같은 억울한 죽음이 이어지지 않도록 피해자와 유족들이 나서서 정부와 기업에 해결을 촉구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은 마루타가 아니다”

고인의 동생 조경진 씨는 “옥시 가습기살균제는 온가족이 함께 사용했다. 어머니가 먼저 돌아가시고 지금 형님이 돌아가셨다. 언제 누구의 차례가 될지 모른다”며, “국민은 마루타가 아니다. 정부가 허가를 내줘서 이런 문제가 생긴 것 아닌가”라고 따져물었다.

또한 그는 “정부와 기업은 보상은커녕 우리 같은 피해자들에게 어떠한 위로의 말도 없었다. 피해를 입은 모든 사람에게 국가로서 사과와 예우를 갖춰야한다”며 “시민들에게 관련한 모든 정보를 공개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재발방지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고인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4월25일 오후 최예용 부위원장이 관계자들과 함께 병원을 방문해 가족을 위로하고 고인의 곁을 지켰다.

최예용 부위원장은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계속되고 있다. 지금이라도 피해자 구제를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검찰의 재수사로 SK와 애경 등의 잘못과 책임이 드러나고 있지만 기업들은 책임인정도 사과도 하지 않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해 특조위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한편 고인의 사망으로 정부에 신고 된 가습기살균제 사망자수는 1402명에서 1403명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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